원소기호 Co인 코발트와 원소기호 Fe의 철 두분자가 모여서 만들어진 것은 무엇일까요? 이 난센스 퀴즈에 대한 정답은 커피(Coffee)이다. 아프리카 북부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인 붉은 콩의 이름이 어떻게 영어로는 ‘Coffee’, 스페인과 포르투갈어로는 까빼(Café)로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에티오피아 말로 ‘힘’이라는 뜻의 카파(Caffa)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상식적 접근이다. 커피의 각성 및 흥분제적 효과는 세계 역사를 바꾼 ‘힘’의 원동력이었음을 그와 관련된 여러 역사적 사실에서 가늠할 수 있다.
6세기경 홍해를 건너 예멘으로 전파된 붉은 콩 카파는 예멘 왕국의 주요 수출품이었다. 그것은 모카 항을 통해 유럽 및 중동으로 수출되었는데, 예멘 왕국은 공급독점을 유지하고자 커피나무의 대외 반출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고려 말 문익점이 중국에서 목화 씨를 생으로 가져와 고려에서 재배에 성공했다. 예멘 당국은 그런 식의 유출을 막으려고 커피콩은 볶은 상태에서만 수출을 허가했다. 그러나 당시 해상무역을 강자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1616년 예멘 당국 몰래 커피나무를 네덜란드로 반출하여 재배에 성공했다. 그후 커피는 유럽에서 역사를 창조하는 ‘힘(Caffa)’을 여실히 보여주기 시작했다.
커피 마시며 한담하는 장소인 커피 하우스(Coffee House)는 15세기 오스만 제국통치하의 콘스탄티노플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유럽에 전파되어 1600년경 교황이 직접 마셔보고는 커피는 “사탄의 음료가 아니다”라 인정하자 급속도로 퍼졌다. 1650년대에 런던의 커피하우스가 처음으로 오픈했지만 Gentlemen’s Club으로 남자만 출입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 열풍이 불어, 불과 30년 후인 1680년 인구 50만 명의 런던에 약 3,000여개의 커피 하우스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는 현재 ‘세계 3위 커피 소비강국’인 한국의 인구대비 커피숍 숫자보다도 더 촘촘했다. 2021년말 기준 우리나라 커피숍은 83,300개로, 인구 약 620명당 1개인데, 당시 런던은 약 170명당 1개인 셈이다.
영국 왕실이 공인하는 과학자들의 모임인 왕립학회(The Royal Society of London)는 1660년에 창설되었는데, 그 초기 멤버였던 로버트 보일이나 아이작 뉴톤 등이 커피하우스에 모여서 토론을 즐겼다. 한국 MZ 세대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족속)의 원조를 찾으라 하면 런던의 커피하우스에서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일 것이다. 1686년 오픈한 ‘르 프로코프(Le Procope)’가 파리의 대표 커피 하우스이다. 고색 창연한 18세기 인테리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금도 영업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의 면면을 알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8세기 계몽주의(The Enlightenment)의 시대정신 볼테르(Voltaire)와 루소 등 사상가들이 자주 모여 담론하였으니, 후일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싹이 움튼 곳이다. 그 뒤 쇼팽, 빅토로 위고 등 많은 저명 인사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해상무역의 주도권이 서서히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이전될 즈음, 1688년 에드워드 로이드(Edward Lloyd)가 템즈 강 선착장 부근에 커피하우스를 열었다. 이 커피하우스의 고객들은 좀 특이했다. 선주(船主), 화주(貨主), 전주(錢主), 선장, 보험업자, 무역업자 등이었다. 당연히 그들의 화제는 무역, 항로, 해상 사고, 새로 건조한 배와 중고 선박의 가격 그리고 각국의 정치 상황이었다. 거기에서 선장이나 화주는 무역으로 큰 돈을 벌 찬스는 확실히 있는데, 난파, 좌초, 해적 등의 위험이 있으므로 이를 담보해 줄 수 있는 전주나 보험사를 찾았다. 이에 주인 로이드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로 “이러 이러한 선박과 화물에 대한 보험을 인수할 의향이 있는 사람은 아래에(Under) 서명해(write) 주세요”라는 게시물을 벽에 붙였다. 그 게시된 종이 하단부에 서명한 사람을 ‘Underwriter’라 하였으니 그가 바로 보험인수인이 되는 것이다. 또 1696년부터는 ‘로이드 뉴스’를 발행해 선박의 입출항, 보험, 건조, 수리, 검사, 가격 등의 정보를 정기적으로 펴냈으니 그것이 오늘날 ‘로이즈 선급(船級; Lloyd’s Register)협회’의 출발이 되었다. 이처럼 로이즈 커피하우스는 영국이 해상무역의 패권자가 되는데 정보와 보험에서 지대한 역할을 했다.
커피하우스에서 돈을 번 로이드는 홀이 더 큰 장소로 이전하여 보험 거래의 큰 ‘멍석’을 깔아 주었다. 그것이 ‘로이드 마켓’ 또는 ‘로이드 보험거래소’ 라 불리는 ‘The Lloyd’s of London’인데, 통상 로이즈(Lloyd’s)라 부른다. 로이즈는 보험회사가 아니다. 규정을 정해 멤버들을 감독하며 시장 관리자로서 역할만 한다. 현재 로이즈 건물에는 변호사, 회계사, 브로커, Underwriter 등 5,000여 명이 일을 한다. 과거 커피하우스에서 전주와 선주를 연결해 주던 개인 중개인에서 대형 회사로 발전된 Brokerage Big 3 사 즉, Willis, Aon, 그리고 Marsh 소속 약 400여명의 브로커들이 보험 가입과 Claim 처리에 관해 피보험자와 보험사의 중간에서 일을 한다. 보험사는 피보험자와 직접 접촉하지 않는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로이즈에는 매일 약 1,600억원 정도의 보험료가 들어오고, 1,300억원 이상의 보험금이 나간다. 브로커가 물건(리스크)을 로이즈에 가져오면 수 천명의 ‘멤버’들이 그 물건을 평가하고 Underwriting(인수) 여부를 심사 숙고한다. ‘멤버’는 독립적으로 보험업을 하는 개인 전주 또는 회사이고, 영국법과 로이즈가 정한 엄격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멤버 중 개인 전주는 ‘Names’라고 전통적으로 부르고 있다. 리스크가 큰 대형 물건이 들어오면 혼자 인수하기에는 위험하므로 여러 멤버가 모여 신디케이트(Syndicate)를 조직하여 물건을 인수하기도 한다. 이때 주도적 역할을 하는 보험사를 ‘Managing Agent’라 한다. 현재 신디케이트 77개가 활동하고 있고, 그들은 보험 기간(보통 2~4년)이 끝나면 다시 헤쳐 모이기를 반복한다.
커피하우스 로이즈가 세계 제일의 보험마켓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영국의 해상무역 패권 장악도 있지만, 실질적인 요인은 로이즈의 공신력이다. 로이즈에서 거래된 보험에 대해서는 멤버는 지급거절이나 지급불능없이 책임을 진다는 전통이 공신력이다. 그 공신력은 그들의 모토인 ‘피덴치아’(Fidentia; 확신, 신념)에서 나타난다. 그 예가 1799년 침몰한 ‘루틴(Lutine)호’ 보험사고이다. 이 배는 영국에서 1억 2500만 파운드 어치(약 2,000억원)의 금과 화물을 싣고 네덜란드로 항해 중 폭풍을 만나 침몰했고, 240여명의 선원들도 모두 사망한 사고이다. 이 배의 화물은 모두 로이즈에서 보험 가입됐고, 사고 후 로이즈의 Underwriter는 두 말없이 즉시 보험금을 지불했다. 이 사건은 로이즈의 공신력을 말해주는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그 후 로이즈는 해저에 있는 난파선에서 종(Bell)을 인양해서 로이즈에 걸어 놨다. 이 종을 한 번 치면 Bad News, 두 번 치면 Good News임을 알려 주는 것이나, 실제로는 로이즈의 공신력을 상징하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경영환경에서 기업 경영자에게 General Insurance 또는 Property & Casualty Insurance 라 불리는 손해보험은 Risk Management, 즉, 위험관리의 하나로서 경영활동의 중요한 항목이다. ‘위험관리’란 경영활동 중에 생기는 ‘불확실성을 인용할 수 있는 수준(Tolerable Level)’으로 줄이는 것이다. 공장 건설 등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단계에서 CEO는 ‘최고위험관리자(CRO; Chief Risk Officer)’를 따로 두어 리스크를 관리하게 하거나, 아니면 겸임하면서 경영상의 모든 위험관리의 책임을 진다.
현대 기업이 당면하는 경영 Risk는 영업, 생산 또는 재경 등 특정 부서가 담당하는 개별적 리스크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치, 글로벌 경제, ESG등 외부 환경에서 오는 Risk는 더욱 복잡해지고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CEO나 CRO는 전사적 위험관리 시스템 ERM(Enterprise Risk Management)을 구축하고 Risk의 식별(Identification), 분석 및 평가(Analysis & Assessment)를 거쳐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여러 옵션을 두고 고민해야 한다. 옵션 중 기본은 Risk를 예방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 다음 옵션은 Risk 발생시 재정적으로 감수하기 어려운 수준 이상의 손해에 대해서는 보험을 들어 리스크를 외부로 이전(Transfer)시키는 것이다. 보험사고 발생 시 보험사가 Cover해 주지 않는 한도를 정하고 그 한도 이내에 대해서는 스스로 보험을 든 것처럼 부담하여 보험료를 줄이는 방법이 자가보험분(SIR: Self Insured Retention) 또는 ‘Deductible’의 설정이다.
기업의 프로젝트에서 리스크 관리의 긍정적 효과는 크다. 경영자의 철저한 리스크 관리 즉, 위험 예방과 회피 노력은 고객의 신뢰를 가져오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부정적 효과를 예방할 수 있으며, 돌발 상황에서도 성장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특히 공신력 있는 보험사와 브로커의 선정은 ‘위험의 이전’이라는 면에서 Risk Management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것이 350년 역사의 런던 커피하우스에서 논의된 최선의 솔루션이다.

진의환 | SOFT LANDERS 고문
5번의 신시장 개척과 신규 공장 건설 프로젝트에서(해외 25년, 중역 14년 근무) 얻은 글로벌 경험과 인사이트를 한국 최초의 글로벌 리로케이션 소프트랜더스에서 나누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중남미권역본부장 CEO & President
- 기아자동차 인도공장 CAO
- 현대자동차 브라질 법인 CAO
- 기아자동차 미국 조지아 법인 CAO, 본사 총무실장
- 현대자동차 미국 알라바마 법인 대외, 홍보, 법무 담당
- 현대자동차 인도 법인 대외, 홍보, 법무 담당